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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orea Hot place

영화 서울의 봄 정보 출연진 등장인물 실제 비교 12.12사건 내용 정리

by jigeumssolki 2024. 1. 16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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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서울의 봄

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~ 1980년 5월까지 박정희 체제가 무너진 후 민주화 희망을 싹티운 기간을 의미하고
1979년 12.12 서울 수도 군산 발란이 발행한 그날 대한민국 운명이 바뀐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입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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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독 / 출연진

영화 서울의 봄

감독

주연

조연

특별출연

영화 실제인물 비교 / 12.12 군사반란 내용

  •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을 살해한 사건이 발행하자 국무총리였던 최규하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됩니다.
  • 국방부 장관이 군대 총책임자가 되면서 계엄사령부가 권력의 중심이 되었고, 10.26 사태 수사를 총괄하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모든 권력을 쥐고자 합니다.

 

  •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 중심으로 육사출신 300명 멤버로 하나회라는 군대 사조직이 있었는데 군 내부 주요 조직은 모두 하나회가 접수하고 있었습니다.
  • 전두환은 10.26 사건 조사를 빌미로 검찰총장과 치안 본부장, 중앙정보부 직무대리를 협박해 자기편으로 만들고 군검찰을 포함에 모두 장악한 전두환은 스스로 대통령인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합니다.
  • 군 최고 권력자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전두환과 하나회를 인사 개편을 통해 몰아내기로 결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두환은 10.26 사건을 조사하면서 김계원의 집에서 9억 원 수표 뭉치를 발견하게 됩니다.
  • 전두환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에게 5천만 원, 박근혜한테 6억 원, 계엄사령관 정승화에게 2억을 주고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자 정승화는 전두환에게 극하게 화를 냅니다.
  • 계엄사령관 정승화는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 사령관으로 좌천시키기 위해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논의했으나, 노재현은 이미 전두환에게 매수당한 상황이었고, 김용휴 국방차관에게 이를 전달하면서 전두환 까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.
  • 전두환은 본인을 좌천시킬려고 하는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없애고 군을 장악하기로 마음을 먹고 박정희 시해 장소에 정승화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승화를 체포하는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에게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제거하려고 계획을 세웁니다.

 

  • "생일 집 잔치" 전두환과 하나회는 12.12 정승화 체포작전을 진행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30사단을 집결해 작전 개시하고 수도권에서 가장 강력한 부대 사령관인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, 특전사령관 정병주,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을 미리 저녁 연회에 참석시켜 대응할 수 없게 잡아 둡니다.
  • 오후 7시10분 33 헌병대원 65명과 보안사 합수부 수사관은 정승화 관저로 들어가 총을 난사하면서 기습해서 정승화를 납치하고 서빙고 대공분실로 데리고 가 모진 고문을 시킵니다.
  • 정승화 체포 동시에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에게 체포 허가를 받을려고 했으나, 최규하 대통령은 노재현 국방부장관과 논의 후 결정하겠다고 허가를 거부하면서 전두환과 하나회의 작전이 틀어지기 시작합니다.
  • 한편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, 수경사령관 장태환, 특전사령관 정병기는 정승화 총장 납치 사건을 알게 되고, 전두환과 하나회는 위기를 느껴 하나회 장성들과 최규하 대통령을 다시 찾아가 강압적으로 허가를 요청합니다.
  • 최규하 대통령은 국방부장관 동의 없이 안된다고 버티자 국방부장관을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하지만 국방부장관은 이미 한미연합사령부로 피신한 상황이었습니다.
  • 수경사령관 장태완이 진압군을 수뇌부가 있는 30 경비단으로 당장 쳐들어올 것처럼 엄포를 놓자 전두환은 하나회 인맥을 총동원해 진압군 병력출동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육군본부와 국방부까지 점령하는 계획을 세웁니다.

 

  • 이때 노태우는 중앙청 장악을 위해 9사단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최전방에 있는 9사단 병력 1,300명을 출동시켜 중앙청을 점령합니다.
  • 장태완과 육군본부는 9 공수여단을 출동 시켰으나, 육군본부 모든 무전으로 도청하고 있던 보안사령부에서 이 사실을 전두환에게 보고 했고 전두환은 육군본부에 전화를 걸어 서울 한복판에서 아군끼리 싸우면 어떻하냐고 9공수여단을 복귀 시키면 자기들도 더 이상 무력 동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.
  • 여기서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전두환 제안을 수락해 9공수여단을 철수시켰으나, 전두환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1 공수여단을 진격시켜 육군본부와 국방부를 점령하게 되고 국방부에 있던 노재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하는 데 성공합니다.
  • 전두환은 특전사령부까지 진압 지시를 하고 전병주 특전사령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전병주를 지키던 특전사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사망하게 됩니다.

 

  • 마지막으로 남은 수도경비사령부는 탱크 4대, TOW 대전차포와 100여 명 병력을 동원해 전두환이 있는 보안사령부로 이동하면서 장태완은 수경사 포병대에게 반란군이 모여있는 경복궁 30 경비단에 포를 조준하라고 지시하지만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 발사는 하지 못합니다.
  • 수경사 지위계통도 합수에 장악되고 수경사 병사 무전기에 세 장태완을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는 무전이 흘러나오자 장태완은 모든 걸 내려놓고 집무실로 돌아가게 됩니다.
  • 반란군에게 회유된 노재현 국방부장관이 장태완에 전화를 걸어 병력 철수 명령을 내리면서 상황이 종료되면서 반란군이 수경사까지 점령하고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체포 허가를 받습니다.
  • 모든 군을 장악한 전두환은 정승화 소속 장성들을 숙청시키고 여기서 전두환은 하나회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를 탄생시킵니다.
  • 이후 대학생 중심으로 신군부 반대 운동이 일어나자 신군부는 5월 17일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국회에서 계엄령을 해지하려고 하자 탱크를 동원해 국회를 봉쇄합니다.
  • 신군부를 반대하는 시민에게 군사를 동원해 제압하는 과정에서 5.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.
  •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면서 신군부를 앞세워 군부 독재를 탄생시킵니다.

 
 
(이미지 출처 네이버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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